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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축구천제 '김병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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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석의 축구스타 클래식 16-1.

일본 축구 전문 잡지 [주간 사커다이제스트] 249호(95년 1월 25일 발행)에 실렸던

연재물(いつか 来る 夜明け: 언젠가 올 새벽)번역.







[19세 때 A대표팀 선발.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백넘버 10번을 달고 출전.

대 일본戰에서는 종료 직전 결승골. 재능도 있었고 강운(强運)도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의 밝은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일본에 있다. 김병수. 24세.

그 젊은 나이에 영광과 좌절을 맛본 사나이의 Story를 2회에 걸쳐

실어 보련다.] - 카네코 타츠히토 -





- 언젠가 올 새벽 -(上)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게 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 듯,

반드시 강한 팀이 이기는 게 아닌 것이 축구라는 스포츠다.

물론 어떤 스포츠나 예상이 빗나갈 때가 있다. 그러나 축구의 경우 그 확률이 특히 높다.

오늘도 지구상 어디에서 확실히 상대보다 잠재력이 있고 또한 더 노력을 했을지 모르는 팀이

무념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약한 팀이 언제나 이기는 걸까?

당연한 얘기지만 아니다.



94년 12월 8일.

천황배 1회전에서 삼프라체 히로시마에게 도전한 코스모석유는 1시간 반을 무실점으로 견디면서

곧 시계의 작은 바늘이 두 바퀴 째를 돌려고 하는 시점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JFL에서 15위였던 코스모석유에는 고교시절 전국 제패를 경험한 미나베(요카이치 중앙공고 출신)가 있었다. 쿠니미 고교에서 처음으로 선수권에 출전 했을 때 주장이었던 아카쟈와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 국내에서 ‘90년대 한국 축구를 짊어질 사나이!’라고 불리운 김병수가 있었다.



지고 싶지 않은 기분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거다.

그렇지만 그것 만으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축구는 간단한 게 아니다.

연장 후반 113분 야나키모토의 미들슛이 터졌을 때 코스모석유 선수들은 실이 끊긴 흔들인형 처럼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의 뇌리에는 92년 말레이시아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새벽 전(前)이 가장 어둡다’ 는 말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스 오프트가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92년 4월은 일본 축구계의 새벽이었다. 수 개월 후 A대표팀은 다이너스티컵, 아시안컵을 제패하며 수십 년에 걸쳐 팬들이 가지고 있었던

콤플렉스를 없애는데 성공했다.

A대표팀의 활약은 1년 후 시작되는 J-리그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마이너 스포츠였던 축구는 일약 국민적인 스포츠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은 92년 4월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불과 3개월 전, 일본 축구계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새벽이 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었다.

정해져 있는 팬, 정해져 있는 기자, 그리고 거의 지명도를 갖고 있지 않은 선수들은 일본이라고 하는

축구 약소국에서 태어난 불운을 저주하면서 말레시아를 뒤로 했다.

92년 1월, 일본은 6개국 중 5위라고 하는 무참한 성적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 꿈을 단념

해야 했다. 일본인을 실의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건 이번에도 한국이었다.



「4차전 때였지요. 당시 양 팀은 함께 승점이 3점이었어요.

다만 득실점 차에서 일본 쪽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민들과 매스컴이

분노를 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상당한 부담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U-16 때부터 일본과 싸워 왔는데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거든요.....」


일본은 죽을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뛰었다. 무승부면 바르셀로나가, 또 새벽이 보인다.

그 생각이 일본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주었다. 스위퍼 소마, 스토퍼 나츠카는 감동적이기

까지한 투지로 한국의 맹공에 맞섰고 그들이 뚫리면 GK시타가와가 춤을 추듯 선방했다.

'우리들도 힘을 합치자!‘ 고 전원이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일본인 기자단과 그 옆에 바로 포진해

있는 한국 기자단도 응원에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강했다.



「미우라 후미타케, 사와노보리 등은 고교 시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맞붙어 봤을 때는 “어? 예상했던 것 보다 강해졌네!“ 라는

느낌은 들긴 했지만 솔직히 진다고는 전혀 생각치 않았어요.」


그래도 일본은 잘 싸웠다. 확실한 실력 차를 보이면서도 골 만은 허용하지 않았다.

‘1분 단위로 시계를 보면서.....당하기 전에 끝내다오! 빨리 끝내다오!‘ 라는 GK시타가와의

기도는 나머지 1분이 경과하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아마 시간적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마지막 찬스였을 거다.

한국은 오른 쪽 코너킥 찬스를 잡고, 일본은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냈다. 그 안도감이

일본 수비수들의 발을 멈추게 했다. 흘러나온 볼을 잡은 한국이 다시 한 번 크로스를 올렸을 때

나츠카는 시야에서 마크를 놓치고 말았다.



「패스는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보다 뒤로 왔습니다. 그래서 골문을

등지는 어려운 자세가 되긴 했는데, 슛을 하는 순간 들어갔다고 생각했지요.」


골문 앞에서 몸을 날린 백넘버 10번의 발리슛은 튀어나온 GK시타가와의 겨드랑이 밑을 통과했다.

실이 끊긴 흔들인형 처럼 쓰러진 일본 선수들.

‘막고 싶었습니다...’ 라고 한 시타가와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고, ‘왜 클리어 했을 때 밀고 나가지

않았을까? 모든 게 저의 책임입니다....‘ 라고 말한 소마를 원통하게 만든 사나이는 일본 선수들의

옆을 환희하며 빠져나갔다.

그게 김병수였다.

그것은 꺼지려고 하는 촛불의 마지막 빛이었을까.

말레이시아에서의 올림픽 최종 예선이 끝난 반년 후, 바르셀로나 본선 무대에 김병수의 모습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최종예선이 끝나고 나서다. 그는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서정원, 강철 그리고 대학 후배인 노정윤은 올림픽을 발판으로 A대표팀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 뿐 아니라 실력 차를 보인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A대표에 선발이

되어 있었다. 김병수 만이 낙오가 된 것이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국 고교 축구의 명문 경신고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고 전국 선수권에서 득점왕 및 MVP를

동시에 수상한 적이 있는 김병수는 최순호와 김주성이 그랬듯이 10대 때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존재였다.

브라질 선수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볼터치와 최고 수준의 정밀한 슛팅력!

한국 전문가들은 뜨거운 시선을 보냈고 대학 1학년 때 그는 A대표팀에 선발이 되었다.

같은 고려대 축구부에서 뛰고 있던 홍명보와 서정원 보다 한 발 앞서 발탁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때 김병수의 왼 쪽 다리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망가져 있었다.

고교 1학년 때 상대팀 선수에게 심한 태클을 당해 다친 무릎과 발목은 나을 것 같으면 무리를 하고,

또 나을 것 같으면 무리를 하는 반복으로 인해 일상 생활 조차 불편을 느낄 정도가 된 것이다.

이태리 월드컵 직전 다리의 통증은 정점에 달했다.

「그래서 한번은 완전히 축구를 떠나 있었습니다.

시합은 물론 연습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생활이 2년간 계속 됐습니다.」


A대표팀 자리는 박탈됐고 ‘어쩌면 출전 기회도 있을지 모른다...’ 는 얘기까지 있었던 이태리

월드컵을 그는 허탈하게 T.V로 관전하는 처지가 됐다.

완전한 휴양으로 인해 다리는 조금씩 회복해 갔는데 목표를 잃어버리다보니 정열도 없어졌다.

김병수란 이름은 이제 과거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한 때,

절망에 있던 그의 축구 인생에 다시 한 번 불꽃을 피운 ‘사건' 이 일어났다.

데트마르 크라머가 한국 올림픽 대표팀 기술고문으로 취임을 한 것이다.

일찍이 일본 전국을 돌며 유망주를 발굴했던 독일의 지장(智將)은 한국의 젊은 선수들 플레이를

비디오로 보면서 철저하게 체크했다.

크라머는 선수를 보는 안목에 있어서는 ‘세계 굴지’ 로 알려져 있다. 파이터 타입이 대부분인 한국

선수들 중에 한 명의 이질(異質)한 분위기를 감돌게 하는 선수를 크라머가 놓칠 리 없었다.

당시 김병수를 본 크라머는 즉시 그를 올림픽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처음엔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크라머 감독님이 열성적으로 설득을 하셨어요.

그래서 올림픽 최종예선 3개월 전에 복귀를 결정 했지요.」


2년 간의 공백은 김병수의 재능을 빼앗아 갔다. 그래도 크라머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제 컨디션 하고는 거리가 먼 선수에게 크라머는 백넘버 10번을 권유했다.

「한국에서 백넘버 10번은 그다지 좋지 않은 번호로 인식되어 있어요.

차범근-최순호-김주성 모두 10번은 달지 않았거든요.

소속팀에서는 10번을 달더라도 대표팀에서는 달기를 꺼려 합니다.

그래서 크라머 감독님께 “10번은 조금.....?” 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크라머 감독님은 “안 된다! 네가 우리 팀의 에이스니까!“ 라고 하시더라구요.」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김병수는 최후까지 본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그래도 크라머는 김병수를 계속 출전시켰다. 그 신뢰는 일본전에서 발휘됐다.

김병수의 귀중한 결승골로 일본을 이긴 한국은 연이어 중국도 누르며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중국戰을 끝낸 날 밤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김병수는 크라머에게 이러한

권유를 받는다. ‘수준 높은 곳에서 축구를 하면 너는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 독일에서

뛸 생각이 없나?‘ 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요한 크루이프에게 매료된 김병수에게 있어서 유럽에서 뛴다는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쁜 꿈이었다. 사정만 허락 된다면 말이다.



2년 간의 공백을 단 3개월의 트레이닝으로 되돌리려 했던 무리(無理)는 그의 왼 쪽 다리를 확실하게

해치고 말았다.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온 그는 독일이 아닌 병원 침대로 직행하지 않으면 안됐다.

수술을 끝내고 나서도 그의 왼 쪽 다리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질 않았다.

바르셀로나 출전은 불가능하게 됐고, 독일행 이야기도 사라졌다.

일본 축구계에 새벽이 다가오려고 할 때 김병수는 축구를 그만 두려고 결의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하편에서....)







김병수

나이: 1970년생

포지션: 미드필더

신장: 175cm

출신교: 경신고-고려대

소속: 제일은행-코스모석유(일본)







참고
: 위의 글은 일본 축구 전문 잡지 [주간 사커다이제스트] 249호(95년 1월 25일 발행)

실렸던 연재물(제목: いつか 来る 夜明け(언젠가 올 새벽). 작가: 카네코 타츠히토)을 필자인

제가 우리 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미 1년여 전에 제가 활동하고 있는 스포츠 웹사이트 ‘후추’에 이 글을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는데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토탈사커 독자 여러분들께도 이 연재를 소개 시켜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스타 클래식]에서 다루게 됐습니다.



'언젠가 올 새벽'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 작가인 카네코 타츠히토(金子達仁)씨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카네코 씨는 1966년생으로 호세이(法政)대학교 사회학부 출신입니다.

대학 졸업 후, 축구 전문지 편집기자를 거쳐 95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96년에는 MIZUNO 스포츠 라이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대단히 유명하고

실력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스포츠 관련 책을 많이 집필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ヨハン クライフ-美しく勝利せよ.(요한 크루이프-아름답게 승리하자!)',

'決戦前夜(결전 전날 밤)', '蹴球中毒(축구 중독)', '28年目のハーフタイム(28년 째 하프타임)',

泣き虫(울보: 격투기 PRIDE 총괄본부장 타카다 노부히코(高田伸彦)자서전)등이 있습니다.




















필자 및 코너 소개




글쓴이 김유석은 '스포츠 커뮤니티의 전설'이라 할 웹사이트 <후추>에 서식하는 수많은 매니아 중에서도 단연 최강의 내공을 자랑하는 고수다. 30대 후반의 나이처럼 한국 축구의 격동기를 몸소 거쳐낸 그의 머릿속에는 한국은 물론 세계 축구계의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김유석의 [스타 클래식]은 우리가 세월속에서 잃어버린 흘러간 스타들에 관한 소중한 기억을 꼼꼼히 재복원해주는 소중한 코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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